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슬픈 날의 편지 - 이해인

석전碩田,제임스 2008. 10. 10. 11:46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 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갤 길 없고

그 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달라는

이 터무니없음을 용서하십시오

 

(기도시집,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