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2006.5.13 가평 연인산 산행

석전碩田,제임스 2006. 5. 16. 10:52
가평군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산으로 알려진 연인산은 명지산 자락의 해발 1,068미터나 되는 높은 산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너무도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널럴하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오해하기도 하는 그런 산입니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골산에 비해 비옥한 땅으로 뒤덮힌 산이어서 대표적인 육산이기도 하지요.

우리 일행이 오른 코스는 백둔리 초등학교(폐쇄되었으며 현재는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음)를 기점으로 해서 소망능선을 이용해 주능선에 오른 후, 장수샘을 거쳐 연인산 정상을 올랐다가 장수능선을 이용해서 다시 백둔리 초등학교로 되돌아 오는 산행로였습니다.


육산답게 산행로는 비옥한 갈색 흙으로 다져진, 매력적인 길이 끝없이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곧게 자란 전나무 군락을 지나면 이내 연초록 잎으로 옷을 갈아 입기 시작하는 참나무 군락이 이어지고,  하늘을 찌를 듯한 참나무 군락지가 끝이 나면 또 다시 키 높은 산철쭉 꽃나무가 자태를 뽐내는 산행로가 이어집니다.  눈 앞에 보일 듯 한 주 능선은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나타나지 않고 경사 깊은 산행로만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가파른 산행로도 저만치 앞 서가는 등산객들이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올려다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이내 키 높은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보드라운 산등성이는 보라빛, 노란 빛 색깔을 띈 들꽃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됩니다. 이 때부터 연인산은 그제서야 이름 그대로 '연인'이 되어 산행객을 포근하게 맞아 줍니다.


주능선에서 정상까지는 들꽃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오솔길 같은 산행로가 길게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 온 산행객들을 위로하는 듯 합니다.

연인산 정상에 서면 멀리 북쪽으로 명지산이 손에 잡힐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이고, 사방으로 뻗어 있는 산세가 마치 초록색 점토로 빚어놓은 입체지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첩첩이 뻗어있습니다.
높은 고지여서 그런지 봄의 끝자락인 산 아래와는 달리, 이곳은 아직도 산철쭉은 꽃망울만 머금고 있고, 주위의 나무들은 연한 초록 잎사귀를 그제야 뾰족히 내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땅 아래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면서 아우성을 치는 듯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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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구름에 덮혀 있는 하늘에서 언뜻 빗방울 듣는 낌새가 느껴집니다. 한 바탕 소나기라도 지나갈 듯한 기세를 느끼면서 하산을 시도합니다.
얼마 쯤을 내려왔을까요.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산철쭉 꽃의 싱싱한 퍼레이드가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산행객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기 시작합니다. 연초록 잎사귀 위에 피어 난 연분홍 철쭉 꽃이 이렇게도 탐스럽고 싱싱하게 피어있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군락을 이뤄 피어있는 철쭉꽃 터널을 거의 한 시간 이상을 걸었을 정도로 환상의 길은 계속 이어졌지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여기 저기서 꽃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웃으며 짝하여 사진을 찍는 산행객들의 모습이 너무도 행복하게 보여, 우리 일행도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럴 즈음, 정상에서부터 묻어 오는 하얀 빗줄기. 머리 위를 지나는 시커먼 구름 한 덩이가 빗줄기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연분홍 꽃을 때리며 후두둑 후둑둑 거리더니 이내 쏴 소리를 내면서 내리는 비는 오히려 봄의 교향악과도 같이 들렸을 정도였지요. 다행히도 구름이 금새 지나가면서 비가 그치면서 햇살이 쨍하게 비치자, 맞은 편 산 등성이에는 그리도 영롱한 무지개가 휘황찬란하게 걸리더군요. 연인산 산행에 나선 선남선녀들을 마치 축복이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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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산, 들꽃, 그리고 산철쭉의 향연과 무지개....
이번 연인산 산행의 멋진 소재들입니다. 이들 소재를 가지고 예쁜 봄 시를 한 편을 지어 숲 속에 사는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왔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산행이었습니다.
2년 전인가요, 이곳 연인산을 처음 왔을 때, 예상외의 힘든 산행과 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들꽃들에 취해, 자세히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아쉬움을 이번 산행을 통해서 자세히 느끼면서 채워넣을 수 있었던 게, 제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