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선풍기 / 슬픔에 대하여 - 유용주

석전碩田,제임스 2025. 8. 13. 06:00

선풍기

– 유용주

지천명 문턱을 간신히 빠져나온
늦가을 새벽은
툴툴거리다가 지쳐 떨어지고

치열했던 열정은 식어
이 빠지고 머리칼 성글고 눈 흐려진 지 오래,
처진 가슴 위에 먼지만 쌓이는구나

닦아내면 상처 자리 빗살무늬 선명한데
여기저기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고 철사로 동여맨
검푸른 한 생애
주름살 파도 넓게 퍼져나간다

장좌불와 20여 년,
아내만큼이나 낡은 몸이 되어
부품 교체하고 수술 자국은 아물어
덜컹거리면서 돌아가는구나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는 삼복더위,
죽부인이 따로 없구나

날개는 철망에 갇혀 있을 때 더 많은 자유를 원하지,
아내는 흰머리를 뽑아 일기장 위에 쌓아놓고 출근을 했다
세월은 방학도 없나 보다

이제 마지막 더위,
갱년기와 싸울 일만 남았다
무슨 힘으로 저 철망을 뚫고 날아갈까

허연 수의 입고 독방에 갇혀버린
날개이자 감옥인 울울창창 내 청춘

- 시집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문학동네, 2018)

* 감상 : 유용주 시인.

1960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4남 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79년 정동 제일교회 배움의 집에서 공부했고, 정규 학교를 가지 못했던 그는 14살 때부터 식당 종업원, 생선가게, 보석 가게, 신문팔이, 술집 지배인, 자장면 배달부, 웨이터, 공사판 막노동꾼, 목수 등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였던 노동자 시인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인 아내의 첫 부임지인 충남 서산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지난 2011년, 40년 만에 고향인 장수로 돌아와 정착했습니다.

가 처음 '시'를 알게 된 것은 19살 때, 정동 제일교회 야학에 다니면서부터였습니다. 야학(夜學) 국어 시간, 칠판에 적혀 있던 윤동주의 ‘서시’를 보고 밤새도록 그의 영혼이 묘하게 일렁거렸다고 했습니다. 그후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 금산’ 등의 시를 만나면서 마침내 그는 시인이 되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고, 신춘 문예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차츰 두려움과 불안함이 엄습해 올 즈음 ‘나의 문학은 곧 내 삶 자체’라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펴냈던 첫 시집 <오늘의 운세>(문학마을, 1990)가 우연히 백낙청 선생의 눈에 띄어, 1991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목수’ 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그의 다짐답게, 첫 시집을 비롯해 지금까지 상재(上梓)된 그의 시집에는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경험들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집으로 <가장 가벼운 짐>(창비, 1993), <크나큰 침묵>(솔출판사, 1996), <은근살짝>(시와시학사, 2006),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겨>(2018),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걷는사람, 2019), <내가 가장 젊었을 때>(시와반시, 2021)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낙엽>(b, 2019), 산문집으로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출판사, 2000), <쏘주 한 잔 합시다>(큰나, 2001), <아름다운 사람들>(한겨레출판사, 2012),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작은것이아름답다, 2014),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걷는 사람, 2018) 등이 있습니다. 또한, 소설 <죽음에 대하여>(b, 2020),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한겨레 출판사, 2009),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유용주의 노동 일기1’을 묶어서 낸 자전적 성장 소설 <마린을 찾아서>(한겨레출판사, 2001)이 있습니다. 1997년 신동엽 문학상, 2018년 거창 평화인권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2002년, MBC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가 소개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는데, 정작 그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고 겸손해 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이 밑바닥 삶 속에서 생활고와 벌인 정직한 싸움이 그대로 녹아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는 산문집은 문단 권력에 전혀 얽매임 없이 자유롭고 분방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삶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늘 감상하는 유용주 시인의 ‘선풍기’는 오래된 낡은 가전제품 하나를 통해 나이 들어 가는 시인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담담히, 그러나 날카롭게 비유적으로 그려낸 시입니다. 낡은 선풍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세월을 고스란히 견디며 제 역할을 다해온 시인의 육신이자 삶의 은유입니다.

‘지천명 문턱을 간신히 빠져나온 / 늦가을 새벽은 / 툴툴거리다가 지쳐 떨어지고 // 치열했던 열정은 식어 / 이 빠지고 머리칼 성글고 눈 흐려진 지 오래, / 처진 가슴 위에 먼지만 쌓이는구나’로 시작하는 시의 1연과 2연은 인생의 반환점을 넘어선 나이를 맞이한 화자의 시선으로 같은 신세가 된 선풍기를 은유적으로 절묘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쇠락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표현이지만, 정작 낡은 선풍기 한 대 툴툴거리며 마지막 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두 실체가 영락없는 닮은 꼴입니다. 오래된 선풍기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고 철사로 동여맨’ 고물 선풍기의 묘사는, 몸을 돌보고 치료하며 버텨온 지나온 세월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장좌불와 20여 년’의 묵묵한 시간, 수술과 회복, 그리고 여전히 덜컹거리며 지탱해 가는 몸. 그 모든 과정이 선풍기의 고장과 수리를 반복하는 일상과 겹쳐집니다.

러나 이 시는 단순한 쇠락의 기록만은 아닙니다. ‘날개는 철망에 갇혀 있을 때 더 많은 자유를 원하지’, ‘이제 마지막 더위, / 갱년기와 싸울 일만 남았다 / 무슨 힘으로 저 철망을 뚫고 날아갈까’라는 시어들은, 나이를 먹어도 꺼지지 않는 자유를 향한 몸부림,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여전히 노래하리라 다짐하는 시인의 각오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문장들입니다. 비록 ‘허연 수의’와 ‘독방’이라는 이미지로 삶의 종착지를 예감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낡아져만 가는 것이 아니라 ‘철망을 뚫고’ 나갈 힘이 어디에 있는지 부단히 찾으며 그 힘을 비축하는 ‘울울창창 내 청춘’이 아직도 전재함을 시인은 외치듯이 노래합니다. 마치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갱년기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시인의 결기와 다짐인 듯합니다. 결국 ‘선풍기’를 통해서 시인은 시간 앞에 무너져가는 육체를 솔직하게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 스민 삶의 애착과 자유를 향한 마지막 몸부림을 놓지 않겠다는 시입니다. 낡았지만 여전히 돌아가는 선풍기처럼, 시인은 끝까지 삶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고 목청껏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은 시집에 수록된 시 한 편을 더 읽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앞서도 썼듯이, 그의 시는 그가 직접 살아낸 삶 속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이라 풋풋하고 또 따스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슬픔에 대하여

- 유용주

지리산 종주를 하다 만난 안종관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채 쉰을 못 채우고 돌아가신 시인 윤중호 형수가 마포 합정동 부근에다 식당을 냈다고 한번 갈아주러 가자고 한다 비빔밥 전문점, 그간의 사정을 알고도 남겠다 언제 서울 올라가면 한번 가보자, 소주 서너 잔에 볼그족족 말씀하셨다 합정동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중호 형 편집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처가에 가서 공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사정을 말 하고 밥 먹으러 갔다 화평동 냉면집에서 돼지갈비와 왕냉면을 먹었다 불현듯 아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장모님께 자랑했다 부부의 날 기념으로 이이가 선물한 것이라고…… 모두들 부러워 하는 눈치다 사실, 그 반지는 친구가 술김에 사서 선물한 것이었다 아내의 자존심을 생각하자 육수처럼 끓었다

외국인 결혼 이주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지 두어 달이 됐다 하루는 집으로 전화가 왔다 서투른 한국말이었다 선생님, 저 무까리예요 저, 화원을 열었어요 꽃집이라는 말은 아주 멀리 있었다 무까리 친정어머니가 이역만리 고향에 있듯, 부영아파트 앞, 부영화원이에요 개업인데, 전화할 곳이 선생님밖에 없어서…… 뒷산 숲속에서 소쩍새가 섧게 울었다 나는 결국 개업식에 가지 못했다 먼 남쪽 바닷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러 가려던 참이었다 무까리……. 부영화원…… 그리고 봄꽃 피었다 지는 5월

- 시집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문학동네, 2018)

시는 삶 속에서 시인이 경험했던 세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각각의 이야기들에 공통적으로 스며있는 ‘슬픔’을 조심스럽게 길어 올리고 있는 시입니다.

은 나이에 작고한 문인 동료의 남은 가족이 합정동에 비빔밥 전문점을 차렸다는 말을 듣고 시인이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개업을 한 것이 아니라, 궁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열어야 했던 식당, ‘그간의 사정 알고도 남겠다’는 말은 동병상련 그 상황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선뜻 하기 힘든 슬픈 표현임에 분명 합니다.

가 집 가족과 모처럼 외식을 하는 날, 예상도 하지 않았던 아내가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가리키며 ‘이이가 선물한 것’이라고 자존심을 지키는 거짓말을 하자, 그 말을 들은 시인이 ‘육수처럼 끓었다’는 표현도, 결국 아내의 그 마음을 훤히 아는 시인의 슬픈 마음입니다.

,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나름 돈을 벌어 조그만 꽃집을 차린 제자의 한마디 - ‘개업인데, 전화할 곳이 선생님밖에 없어서.....’- 이 말이 시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홀로 길을 개척해 온 시인도 많이 겪어 본 비슷한 상황들. 그러나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이 있듯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어린 딸을 아내 대신 돌봐야 하는 자칭 ‘전업 주부’인지라 개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못난 선생님의 슬픈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뒷산 숲속에서 소쩍새는 그리도 섧게 울었다고 시인은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제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공기에서 가을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선풍기도 이제 곧 사명을 다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시인의 간절한 소망대로, 갈 때 가더라도 마지막까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 본연의 일’에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지천명 선풍기’이길 응원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