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제가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만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고요?)
안 되겠다면 도리 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 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싶어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註* 2001년 5월 작고한 이성선 시인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 부분을 빌리다
-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 감상 : 김사인 시인.
1956년 3월 30일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 국문학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재학 시절, 서울대 <대학 신문>에 ‘연시를 위한 이미지 연습’, ‘밤 지내기’ 등의 시를 발표했던 문학청년이었지만, 1977년 11월,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1982년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청사, 1987)(문학동네, 2005, 개정판)를 낸 이후 19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을 냈으며, 또 그로부터 9년 뒤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를 냈습니다.
80년대 들어 시인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중 문학 진영의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노동 문학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실천문학> 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역임하였고, 1989년 <노동 해방 문학>을 창간, 발행인이 되었습니다. 한국 작가회의 사무국장을 거쳐 2002년에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2000년부터 라디오 <불교방송>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던 ‘살며 생각하며’를 4년 넘게 진행했고, 그 인연으로 해인 승가대학에서 강사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또 2014년 12월 2일 처음 문을 연, <창작과 비평사>에서 만든 시 전문 팟캐스트 ‘시시(詩詩)한 다방’의 호스트로 오랫동안 방송에 참여한 그를 ‘방송인’으로 소개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그는 2018년 임기 3년의 한국문학 번역원 제7대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신동엽 문학상(1987), 현대문학상(2005), 대산문학상(2006)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문학상을 주관하는 <창작과 비평사>의 비상임 편집위원으로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간곡히 사양하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백담사 계곡 만해 마을 앞에 있는 다리 밑에서 장기간 피서를 즐기는 고향(별고을) 친구들이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다리 아래에 아지트를 차려놓았으니 오가면서 시간이 되면 한번 들러 놀다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김사인 시인의 이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백담사 계곡에서 영면에 든 고(故) 이성선 시인을 기리며 읊은 시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이 시에는 이성선 시인의 시 두 편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다리’라는 시는 전문(全文)을 그대로 옮겨왔고, ‘별을 보며’는 앞 1연을 빌렸습니다. 시인이 표현한 대로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 제가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물어볼 정도로 좋은 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누구는 여름철 시원한 피서 장소로만 생각하고 찾아드는데, 그런 평범한 다리를 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을 시적 은유(詩的 隱喩)로 건져 올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시인이 이런 좋은 시는 그저 다시 한번 정성스럽게 베껴 쓰는 것만으로도 시 한 수를 지은 셈 쳐 달라고 하니 시인의 너스레 또한 예사롭지 않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 시에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너무도 빨리 건너버린 고(故) 이성선 시인을 그리워하며 그가 잠들어 있는 백담사 계곡의 그 다리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는 사실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나름 정성스럽게 감상문을 쓴 후 블로그에 올리고, 또 그것을 주변의 지인들에게 보내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똑같은 글을 읽고 반응하는 것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은 지 거의 1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아마도 그날은 여유를 가지고 글을 천천히 읽었나 봅니다. 화들짝 놀라 제게 이런 답신을 보내온 지인도 있었습니다. “매주 보내 주시는 글이 저는 어디에서 그냥 갖고 오는 글인 줄 알았는데 직접 쓰시는 글이네요. 대단하셔요.”
아마도 시인도 시를 쓰고 글을 쓰면서 같은 심정이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 시를 외롭게는 말아 주세요, 모쪼록’ 하느님께 기도하는 형식으로 표현했지만, 실은 시를 마음으로 읽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며 읽는 이들에게 말하는 죽비와도 같은 일침입니다.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그들은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일상에 바쁜 사람, 머무르지 않고 그저 다리는 건너기 위한 도구일 뿐, 목적지로 가기 위한 통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사유하지 않으며, 다리 위에서 별을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공감과 따뜻한 시선보다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목표 지향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다리 위에서 별을 보며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마음 졸이며 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용히 서서 별을 보며 생각하고, 다리의 마음까지 느끼는 사람입니다. 다리의 외로움도, 고요도, 깊이도 느끼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고 노래합니다. 아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속물이 되어 있는 자신은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일 뿐이라고 절규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가볍게 읽고 지나갈 수 있는 시는 결코 아닌 듯합니다.
‘다리’는 연결의 상징, 즉 이쪽과 저쪽을 잇는 사랑과 관심의 시적 은유입니다. 그 다리 위에서 천천히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자고 노래하는 시인은 이성선 시인의 시를 ‘빌려왔다’고 각주를 달고 있습니다. 그 시적 어법과 주제를 차용(借用)하지만 의식적으로 전복시켜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의 시 한 편을 더 읽어 보겠습니다.
그림자가 없다
- 김사인
내 곁의 여자는 손거울을 꺼내 루즈를 바른다. 맞은편 짧은 치마의 아가씨가 그물 스타킹 발을 벗어 구두 위에 얹고 조는 동안, 그 곁 검정 배바지의 50대는 다리를 턱 벌리고 오가는 사람을 아래위로 훑는다. 손잡이에 매달려 통화에 빨려든 젊은 여성은 배꼽과 허리만 남긴 채 이미 이곳에 없고, 그 앞에서 발을 떨며 문자 메세지를 찍어대는 노랑머리 대학생의 구멍 난 청바지 틈엔 허연 살이 아프다.
다들 고향에는 윗대 산소며 큰집 작은집이며 논둑길이며 앞산 밑 개울도 있던, 봄이면 우물가로 앵두꽃도 한철이던, 할아버지는 사랑에서 에에-퉤하고 위엄있게 가래침도 뱉던 집 자손들이다.
어디서 또 만나겠는가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림자가 없으니.
- 시집 <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 2015)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은근슬쩍 서울 지하철의 익숙한 풍경을 통해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시인은 무심히 스쳐 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들을 관찰자가 되어 담담하게 적어 내려갑니다. 손거울을 들고 옆에 누가 있든 상관하지 않고 루즈를 바르는 여자, 그물 스타킹 발을 벗은 채 졸고 있는 아가씨, 손잡이에 매달려 통화에 빠져 옆에 있는 사람은 아예 존재감이 사라진 젊은 여성, 다리를 쩍 벌리고 앞에 있는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50대 남정네, 정신없이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를 찍어대면서 발을 떨면서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허연 허벅지를 드러낸 대학생까지. 모두가 고향과 가족, 어떤 기억의 연속 위에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완전히 다른 타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고향의 기억조차 잠시 잊은 채 서로에게 그림자조차도 드리우지 않습니다.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이자,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고향의 기억마저 멀어져 버린 지금의 현실을 말합니다.
백담사 계곡에 잠들어 있는 고(故) 이성선 시인이, 매년 여름 그 다리 아래에서 피서(避暑)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을 내려다보며, 놀이에만 빠지지 말고 여한 없이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라고 권하지는 않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별아, 어찌하랴 /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이성선의 시 ‘별을 보며’ 나머지 부분, 이성선 시전집, 시와시학사, 2005)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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