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굽어지다
- 이정희
어떤 정황을 두고
안쪽으로 팔이 굽었다고 핀잔을 들었다
안으로 팔이 굽어지는 일들 중
정겹지 않은 일이 있을까
누구를 안아주거나
어깨를 토닥이는 일 같은
저 을씨년스러운 옛집도
익숙한 어둠이 안아주고 있지 않는가
안으로 굽어진 사람들은 가족이 되어
서로 체온을 나누는 집이 되고
산 옆 웅덩이는
산 그림자와 장마의 한철을 껴안고
개구리의 파문에 중심을 얻곤 한다
사람의 관절은 모두 안쪽으로 접혀
두 팔 벌려 바깥을 끌어안으면 내 편이 된다
강은 논과 밭 사이를 무반주로 일렁인다
푸념처럼 문을 꼭꼭 잠근 나는
너무 멀리 있거나 가까이에 있는
이웃 속에서 산다
바깥으로 뻗는 대신
안으로 휘는 곡선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굽히면 보이지 않던 긍정들이 보인다
- 시집 <꽃의 그다음>(상상인, 2021)
* 감상 : 이정희 시인.

1961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효성여자대학교 지리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 창작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2015년 <문학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하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경상일보> 신춘 문예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시집으로 <길 위의 섬>(문학세계, 2016), <꽃의 그다음>(상상인, 2021), <하루치의 지구>(상상인, 2024) 등이 있습니다. <해동공자 최충 문학상>, <순암 안정복 문학상>, <중봉 조헌 문학대상>, <독도 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살다 보면 뜻밖의 말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가볍게 던진 핀잔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거 아니야?’ 공정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또 사사로운 편을 든다는 뉘앙스가 있는 그 말 속에는 은근한 비난과 경계가 섞여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를 감싸거나 두둔했고, 그 대가로 이 말을 들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곱씹다가 멋진 한 편의 시를 건져 올렸습니다.
‘안으로 팔이 굽어지는 일들 중 / 정겹지 않은 일이 있을까’ 정말로, 안으로 굽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인가? 이 질문 하나가 시의 중심을 이룹니다. 이 시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 그 말을 곰곰이 붙들고 사유합니다. 그리고 몰아치는 짧은 호흡의 리듬으로그 답들을 열거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누군가를 끌어안을 때, 어깨를 토닥일 때, 아이를 품에 안아 올릴 때입니다. 그 동작은 편애가 아니라 보호이고, 불공정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입니다. 또 시인은 주위를 둘러봅니다. 저 을씨년스러운 옛집조차 익숙한 어둠이 안아주고 있지 않은가. ‘산 옆 웅덩이는 / 산그림자와 장마의 한철을 껴안고’ 개구리의 파문이 있어 그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우리 몸 또한 곧게만 서 있지 않습니다. 휘고, 감싸고, 안으면서 자기 자리를 마련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문장이 이것입니다. ‘사람의 관절은 모두 안쪽으로 접혀 / 두 팔 벌려 바깥을 끌어안으면 내 편이 된다’ 우리 몸의 구조는 끌어안기 위해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밖으로만 꺾이는 관절을 가진 존재라면 우리는 서로를 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는 애초에 ‘안으로 굽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다는 통찰입니다. 그렇다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은 어쩌면 인간다움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따뜻한 정서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푸념처럼 문을 꼭꼭 잠근 나는’이라는 표현에서 화자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안으로 굽는 태도가 때로는 스스로 고립시키는 곡선이 되기도 함을 알고 있는 듯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너무 멀리 있거나 가까이에 있는 / 이웃 속에서 산다’고 말하면서 ‘안으로 굽음’은 닫힘이 아니라 ‘서로 부대끼며 끌어안음’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조용하지만 단단합니다. ‘바깥으로 뻗는 대신 / 안으로 휘는 곡선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 굽히면 보이지 않던 긍정들이 보인다’ 직선은 빠르고 분명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날카롭습니다. 곡선은 느리고 우회합니다. 그러나 부드럽고 오래 갑니다.
이정희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너무 곧게만 서 있으려 하지 않았는가. 괜히 중립적이고 공정해 보이려 애쓰다가 누군가를 감싸는 일에 주저하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배우게 됩니다. 세상은 차가운 균형 위에서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딘가로 조금 기우는 마음, 누군가를 향해 조금 더 접히는 태도가 관계를 만들고 공동체를 지탱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경상북도 고령. 제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성주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농사꾼의 자녀로 태어났고 또 비슷한 연배의 시인이라, 그녀의 시편들을 읽으면 시공간적으로 공감 가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경상일보> 신춘 문예에서 당선된 시를 읽으면 농사짓는 시골 농부 아버지를 둔 시인의 서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곰삭은 거름, 비록 굽어지고 낮아진 쓸모없는 것 같은 존재지만, 냄새 나는 거름이 풍성한 생명을 살려내는 귀한 자양(滋養)이라 노래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한 시입니다.
거름
- 이정희
늘그막의 아버지
벗어놓은 양말이며 옷가지에서
거름 냄새가 났다
그건 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를 포기하는 냄새였을까
그 옛날 장화를 벗을 때나
땀에 전 수건을 받아들 때 나던
그 기세등등한 냄새에서
초록을 버린 풀들이 막 거름으로
이름을 바꿀 때의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앙상한 등짝으로 부려놓은 풀 더미에 가축 오줌과 똥을 잘 섞는다 각자의 냄새를 지켜내겠다고 서슬 퍼렇게 날뛰던 것들이 오래 지켜온 습성을 버리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냄새로 진동하던 것들이 고집을 버려 삭아지고 토해내며 거름으로 될 때의 냄새가 난다 검은 흙빛 미지근한 열감으로 모든 냄새들이 포기하여 뭉쳐진 거름
들녘을 키우며
아낌없이 주는 거름
깜빡 졸고 있는 그 틈에도
아버지의 밭은 성성했다
러닝셔츠 구멍 사이로
기력 다 빠져나간 아버지의 밭에
폭 삭은 거름 한 짐 뿌리고 싶은데
지금쯤 아버지는
어떤 냄새로 접어들었을까
-2020년 <경상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
겉보기에 하찮고 냄새나는 거름이 결국 생명을 키우는 자양이 된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자리에서 가장 깊은 생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통찰은 ‘안으로 굽어지다’에서 보여주는 삶의 통찰과 서로 닮아있습니다. 비난받기 쉬운 말과 사물을 삶의 긍정으로 되돌려 놓는 힘이 닮았고, 낮은 자리, 구부러진 자리, 겉으로 보기엔 옳지 않아 보이는 방향 속에서 오히려 생의 중심을 발견하는 시선이 닮아있습니다.
어제 설날 아침에는 어떤 덕담을 나누셨는지요? 저는 “그저 물 흐르듯이 무엇을 하든 ‘꾸준히’ 하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성심성의껏 꾸준히 하다 보면 ‘사람’을 만나 인연도 생기고, 또 ‘기회’를 만나 나누고 봉사할 수 있는 상황도 생긴다고 말입니다. 하찮게 보이는 일이지만 성심성의껏 ‘꾸준히’할 때 비로소 무엇인가가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스스로 삶 속에서 배운 어설프지만 확실한 지혜라고나 할까요.
2026년 설날을 보내면서,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겉으로는 하찮고, 때로는 비난받는 것들이 속으로는 생명을 키우는 자양분, 거름이 되듯이 조금 굽어도 ‘그럴 수 있지’하면서 안아줄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합니다. 조금 안으로 휘어도 그 곡선이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방향이 아니라 ‘안으로 굽어진 사람들은 가족이 되어 / 서로 체온을 나누는 집이 될’테니까 말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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