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블랙리스트 / 상 - 박준

석전碩田,제임스 2026. 1. 28. 06:00

블랙리스트

- 박준

몇 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회창, 양상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 때 나는 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

* 감상 : 박준 시인.

1983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2008년, <실천문학>에 ‘모래내 그림자극’으로 신인상에 당선,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8), <우리는 안녕>(난다, 2021),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 <계절 산문>(달, 2021) 등이 있습니다.

번째 시집으로 2013년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7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부문), 2019년에는 두 번째 시집으로 <편운문학상(시 부문)>과 <박재삼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난 2020년 3월부터 CBS 음악 FM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 DJ를 맡아 2년 6개월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 <창비>에서 전문위원으로 편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집이 독서 관련 TV 프로그램인 <비밀 독서단>에 소개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는 문학적인 호평과 함께 대중적인 인기도 함께 거머쥔 드문 시인입니다. 첫 시집은 64쇄를 넘게 찍어 판매 부수 22만 부가 넘었고(2025년 5월 기준), 산문집은 19만 부가 팔렸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 발간된 두 번째 시집도 이미 8쇄를 내서 7만 부를 거뜬히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학계의 아이돌 시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늘 감상하는 그의 시 ‘블랙리스트’는 웃음과 씁쓸함이 함께 전해지는 시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식에 부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미리 적어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살아 있을 때의 관계가 죽음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이 못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가 떠난 뒤, 화자는 그 뜻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고모의 말은 변명이자 핑계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가장 솔직한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을 때도 그 말을 온전히 따르며 살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장례식장에는 결국 그 ‘부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적는 이들의 이름이, 그 ‘블랙리스트’에 대부분 들어 있었다는 마지막 행은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만 오면 부모의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내내 울어야 했던, 우리의 전래 동화 '청개구리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평소 말을 제대로 순종하지 않던 자식이 거꾸로 할 걸 알고 시냇가에 묻어달라 유언했던 부모의 마음을 끝내 알지 못해 진짜 시냇가에 무덤을 만든 청개구리의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거니와, 사실은 죽음 앞에서도 유머스러운 이야기를 소환하여 정반대의 유언을 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천진스러운 여유가 상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뒤늦은 반성으로도 읽히지만, 동시에 우리의 장례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정말 죽은 이를 위해, 혹은 남은 이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는 것일까. 관계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와야 할 사람’과 ‘왔다는 흔적만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으로 구별되는 우리네 장례식 모습이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화두 말입니다.

칠 전, ’아침에 읽는 한 편의 시‘를 읽는 후배님 한 분이 이 시를 보내주었는데 짧은 산문처럼 다가온 시를 읽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 나는 과연 얼마나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는가. 막내로서 평생 부모님을 모셨고 두 분 모두의 임종을 지켜보았지만, 그 사실이 곧 순종과 이해를 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늘 곁에 있었기에 오히려 가볍게 흘려보낸 말들이 더 많았으리라는 생각들.

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엊그제 고등학교 동창 세 명과 시내 광장시장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차담을 길게 나눌 때, 함께 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이 쓴 글이 최근 교회 격월간지에 실렸다면서 읽어보길 권했던 글의 주제도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말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 묻고 듣는 적극적 경청'에 관해 쓴 글이었습니다. ‘더 잘 말하는 기술보다 더 잘 듣고, 더 깊이 묻는 적극적인 경청’을 하고 싶다는 다짐이 담긴 글이었는데, 그가 인용했던 성경 야고보서의 구절이 아직도 마음에 남습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러나 대개 우리는 그 반대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너무 자주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듣지 않고, 떠나신 뒤에야 그 말의 무게를 헤아립니다. 그래서 시 속에 등장하는 ‘블랙리스트’는 단순한 명단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제대로 묻지 못하고 또 제대로 듣지 못한 후회들의 목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은 시집에 실려 있는 시 한 편을 더 읽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작년 5월, '배웅도 없이' 훌쩍 떠났지만 금방이라도 식탁 맞은 자리에 아무일 없었던 듯 돌아와 자연스럽게 얘기를 건넬 것 같은 작은 누나가 생각 나는 시입니다.



- 박준

아니 글쎄 그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나무젓가락만 쪼개놓고 그냥 갔더라니까. 무침이랑 편육이랑 동그랑땡에 손도 안 대고 진미체랑 땅콩이랑 절편도 그대로야. 아니지, 진작에 바짝 말라서 치우고 다시 상을 본 거지. 나는 처음에 통화하러 갔나보다 했어. 그런데 아무리 지나도 안 오더라. 그래서 내가 전화를 걸어봤거든. 그런데 안 받아. 통화음이 가는데 안 받아. 기다리다 못해 상을 치우려는데 생수 뚜껑이 열려 있더라고. 어쨌든 손님 많이 몰려도 일단 저 빈자리는 비워놔, 알았지? 혹시 형이 다시 올 수도 있잖아. 솔직히 말해서 형이 누나를 얼마나 좋아했냐. 누나는 늘 형을 가없어했고. 나 눈 좀 붙일게.

-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 2025)

느 날, 황망하게 떠난 매형의 장례를 치르면서 미망인이 된 누나에게 그때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화자의 목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눈물겹습니다. ‘손님이 많이 몰려도 일단 저 빈자리는 비워 놓으라’는 문장의 은유가 너무 강렬해서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비록 장례식을 찾는 손님의 숫자는 적더라도, 이 정도로 먼저 간 자를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 몇 명이면 최고의 장례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늘 저에게는 이 두 편의 시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2002년 1월 28일, 그러니까 정확하게 24년 전 바로 오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의 기일(忌日)을 맞아, 아버지의 말씀 중에서 그때는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말들 혹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듣지 못해서 그저 넘겨버린 '블랙리스트'는 없는지 점검해 봅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직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자고. 황망히 떠난 뒤에야 후회하며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묻고 듣는 적극적 경청으로 관심을 기울이자고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