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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변화, 그리고 전복적인 그리스도인

석전碩田,제임스 2019. 4. 9. 09:33

"But many who are first will be last, and many who are last will be first."(Matthew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30)

 

* 묵상 : 오늘 묵상하는 구절은 성경에 나오는 난해한 구절들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10:31)에 나오는 이 표현은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의 완벽함을 뽐내려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준 후에 나를 따르라는 말에 근심하며 떠났다는 일화 뒤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부자가 구원받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렵다는 말씀 끝에 결론적으로 했던 표현입니다.

 

이에 비해 누가복음에서는(1930)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이라는 가르침을 하는 여러 말씀 중의 한 말씀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의 다른 곳(2016)에서도, 농장에 들어 온 일꾼들에게 처음 온 자나 나중 온 자에게 똑같은 삯을 주는 주인에게 먼저 온 자가 항의할 때 이 표현으로 하늘 나라는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결론 부분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당시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뒤집는 그 무엇'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전복적이고 불온하기 그지 없었다는 말입니다.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랐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위의 사람들을, 아니,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우리가 평가하고 바라보는 사람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바라 본다면 진짜로 성공한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관점이 바뀌는 순간, 즉 시각이 바뀌는 순간 첫째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꼴찌가 되고, 꼴찌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첫째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전복(顚覆)'이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반공 교육을 너무도 철저히 받은 우리들은, 국가 전복의 혐의로 붙잡혀 들어가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국가나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위해서 혁명을 할 때 이 단어를 쓰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전복적(顚覆的)'이라고 하면 불온하고 수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전 유진 피터슨이 쓴 책을 읽다가 이 단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라는 사실에 무릎을 탁 치는 깨달음이 있은 후부터, 저는 이 단어가 그리 불온하게 느껴지지 않게 될 정도로 좋아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목회자의 영성>이라는 그의 책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대목을 설명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첫째, 바쁘지 않는 목사여야 하고, 둘째, 전복적인 목사가 되어야 하며, 셋째 묵시적인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주님, 이 아침에 하늘 나라는 어떤 것인지 한 가지 표현을 통해서 다시 묵상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혹시 이런 하나님의 나라 법칙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관점으로 열심히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제 자신을 점검해 봅니다.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전복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힘 주시고, 하늘 나라의 관점을 허락해 주옵소서.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