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산을 오르다가 / 독백 - 이재무

석전碩田,제임스 2024. 2. 28. 06:19

산을 오르다가

- 이재무

한 무더기 꽃마리 보았네
바람이 불 때마다
산을 흔들고 있었네

지상에 피어난 푸른 별들
꺾고 싶었지만
뿌리째
정원으로 옮겨 오고 싶었지만

애써 욕망을 누르고 비웠네
태어나 자란 곳에서
살다가 죽는 것은 그들의 권리라네

사랑은 소유하지 않는 것
존재를 지켜 주는 것
찾아가 바라보는 것

언제든 보고 싶을 때
산을 오르면
한 무더기 꽃마리가 있다네

- 시집 <고독의 능력>(천년의 시작, 2024)

* 감상 : 이재무 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습니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1983년 <삶의문학>, <실천문학>, <문학과사회>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집으로 <섣달그믐>(청사, 1987),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문학과지성사, 1990), <벌초>(실천문학사, 1992),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 1996), <시간의 그물>(문학동네, 1997), <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푸른 고집>(천년의 시작, 2004), <저녁 6시>(창작과 비평사, 2007),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화남, 2007), <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 <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2014), <슬픔은 어깨로 운다>(천년의 시작, 2017), <데스벨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20), <즐거운 소란>(천년의 시작, 2022), <한 사람이 있었다>(열림원, 2022), <고독의 능력>(천년의 시작, 2024) 등이 있으며, 시선집 <오래된 농담>(북인, 2008), <길 위의 식사>(문학사상, 2012). <얼굴>(천년의 시작, 2018), 산문집 <생의 변방에서>(화남, 2003),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화남, 2010). <집착으로부터의 도피>(천년의 시작, 2016), <쉼표처럼 살고 싶다>(천년의 시작, 2019), <괜히 열심히 살았다>, 공저 <우리 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웅진닷컴, 2002), <긍정적인 밥>(화남, 2004), 시평 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화남, 2005)이 있습니다.

2회 난고(김삿갓) 문학상(2002), 편운문학상(우수상, 2005), 제1회 윤동주시상(2006), 소월시문학상(대상, 2012), <풀꽃문학상>(2015), <송수권시문학상>(2017), <유심작품상>(2019), <이육사문학상>(2020) 등을 수상하였고,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계간 시 전문지 <천년의 시작> 대표입니다.

재무 시인의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시집을 구입해서 시집에 실린 두 편의 시를 골라 봤습니다. 이재무 시인의 시는 2020년 1월 마지막 주, ‘겨울나무’와 그의 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을 읽은 후(https://jamesbae50.tistory.com/13410849), 그동안 1년에 한두 편씩을 꾸준히 읽었던 듯합니다. 2021년 11월, ‘십일월’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두 편의 시(https://jamesbae50.tistory.com/13411206)를 감상했고, 2022년 2월에는 ‘커밍아웃’, ‘신이 앓고 계시다’(https://jamesbae50.tistory.com/13411271)를, 2023년 1월 마지막 주에는 ‘겨울밤’(https://jamesbae50.tistory.com/13411497)을 감상했습니다.

재무 시인의 시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시의 소재를 갖고 오되, 그것을 ‘지금 여기서’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해 봄직한 것을 깔끔한 시어로 풀어내고 있어 마치 한 편의 수필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스토리텔링이 있는 이야기책을 읽는 것 같아 편하게 공감하면서 언제 읽어도 참 좋습니다.

히, 이번에 발간된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지공 선사’의 나이인 육십 중반을 막 넘어서면서, 욕망을 털어내고 주변의 온갖 만물들을 애정(愛情)하는 연애 감정을 쏟아낸,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언어의 틀을 바꿔 이제 몸에 익기 시작한 ‘어른다운 지혜와 겸손의 버릇에서 우러난’ 원숙한 감성들이 묻어 나는 시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책길 옆에서 만나는 잡풀에서부터 바람, 햇볕, 산, 언덕, 강, 해와 달, 한 무더기 꽃마리, 괭이눈, 애기똥풀, 돌멩이, 낮에는 호박꽃, 밤에는 박꽃, 그리고 계곡의 물소리, 외딴 빈집 장광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금 간 항아리 등 그가 애정하는 대상에는 제한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빗소리도 ‘그냥’ 평범한 빗소리가 아니라 시인의 귀에는 ‘개울에서 기어 나온 빗소리 / 감나무에서 튕겨 나온 빗소리 / 대추나무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 밤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빗소리 / 채전에서 흘러드는 빗소리 / 지붕에서 통통 뛰는 빗소리 / 우산 위에서 굴러온 빗소리’ 등 실로 그 가짓수가 다양하게 넘쳐납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나이 들어가는 시인이 욕망을 하나둘 내려놓는 연습을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시여서 선택해 봤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오래전 에릭 프롬의 명저(名著)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라는 책에서 읽었던 한 가지 예(例)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삶이 소유를 지향하는 삶인지, 존재를 지향하는 삶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든 예가 산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꽃을 봤을 때, 그것을 뿌리째 캐와서 자기 집 정원에 심어놓고 자기만 즐기는 삶을 ‘소유의 삶’이라고 했고, 그 자리에 놔두고 그 꽃이 생각나면 자기가 다시 그곳으로 와서 즐기는 삶이 ‘존재의 삶’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시에서 시인도 산을 오르다가 만난 이쁜 꽃마리를 ‘뿌리째/ 정원으로 옮겨 오고 싶었지만’ ‘애써 욕망을 누르고 비웠’노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그 이유는 산을 온통 흔들고 있는 ‘지상에 피어난 푸른 별들’인 그 꽃들이 나고 자란 그곳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그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말 못하는 미천한 꽃 한 송이지만, 시인은 그와 마치 인격적인 사랑을 하듯 내가 소유하기 위해서 그를 훼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두고, 그 존재를 다시 찾아오는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시인의 애정어린 세심한 눈과 마음, 그리고 그의 숨결이 스쳐가면 주변의 만물들은 모두 그의 아름다운 시어로 인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루를 마감하면서 그가 ‘저녁’과 대화를 나눈 ‘독백’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더 감상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독백

- 이재무

저녁이 슬며시 다가와 옆구리를 찌른다
여봐, 친구, 왜 표정이 어두운가?
난 저녁의 찬 손 떼어 놓고
신이 막 붓 칠 끝낸 묵화를 바라본다
난 결심한 게 있다네
얼마 후 저 묵화 위에 달이 떠올라 낙관을 찍으리라
속이 시끄럽군
머릿속 자욱한 발자국을 지우게나
저녁은 가래 뱉듯 핀잔을 던지고는
바삐 골목을 돌아 나간다

- 시집 <고독의 능력>(천년의 시작, 2024)

통 더 가지려고만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부추기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생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매일 매일을 마감하는 저녁 시간, 우리 속을 시끄럽게 하는 온갖 잡생각과 욕망으로 인해 ‘머릿속 자욱한 발자국을 지우’는 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들었던 저녁의 핀잔을 명확하게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여봐, 친구, 왜 표정이 어두운가’ ‘사랑은 소유하지 않는 것 / 존재를 지켜 주는 것 / 찾아가 바라보는 것’ 그리고 ‘머릿속 자욱한 발자국을 지우게나’ 제발!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