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행 막차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 박철
김포행 막차
- 박철
그대를 골목 끝 어둠 속으로 보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의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
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흔들거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멀리 비행장 수은등만이
벌판 바람을 몰고와
이렇게 얘기합니다
먼 훗날 아직도
그대 진정 사람이 그리웁거든
어둠 속 벌판을 달리는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
흔들리는 뒷모습을 생각하라고.
- 시집 <김포행 막차>(창비, 1989)
* 감상 : 박철 시인.
1960년 1월, 서울 강서구 개화동(당시에는 김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성남고와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외 1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또 1997년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면서 소설가로도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창비, 1989), <밤거리의 갑과 을>(실천문학사, 1992), <새의 전부>(문학동네, 1994), <너무 멀리 걸어왔다>(푸른숲, 1996),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문학동네, 2001), <험준한 사랑>(창비, 2005), <사랑를 쓰다>(열음사, 2007), <불을 지펴야겠다>(문학동네, 2009), <작은산>(실천문학사, 2013),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창비, 2019), <새를 따라서>(아시아, 2022) 등이 있으며, 소설집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실천문학사, 2006) 어린이를 위한 책 <옹고집전>, <선비 한생의 용궁답사기>, <김포 아이들> 등이 있습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며, 문화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하였습니다. 2006년 단국문학상, 2009년 천상병 시상, 2010년 백석문학상, 2019년 노작문학상, 제16회 이육사 시문학상, 서울 성남고 자랑스런 동문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박철 시인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인 지난 4년 전, ‘버리긴 아깝고’라는 시를 읽으면서 소개했던 적(https://jamesbae50.tistory.com/13410947)이 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퇴직 후 강화 전원주택으로 가는 계획을 포기하고, 대안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란 개화동에 있는 단독주택에 필이 꽂혀 열심히 그 동네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곳 은평 뉴타운 아파트로 갑자기 이사 오기 전, 개화동을 거의 1년 정도 들락거렸지만 미친 듯이 오르는 집값 때문에 그만 마음을 접어야 했던 아쉬운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서울에 있지만 ‘김포공항’이라는 걸출한 국제적인 공항이 인근에 있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있는 동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곳이지만 아직도 단독주택이 오롯이 제 형태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손등 같은 작은 산’ 개화산 기슭에 상사마을, 부석마을, 신대마을, 내촌마을, 그리고 새말 마을 등 정다운 이름의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시인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개화동은 경기도 김포였지만 시인이 서너 살 되던 해쯤에 서울로 편입되었고 그 이후, 서울의 마지막 경계선 마을이 되어 ‘진짜 김포’로 가는 나들목 역할을 하는 ‘서울에 있는 동네’지만 아직도 여전히 40여 년 전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이 개화동이다 보니 그의 문학 작품 속에는 그 마을에서 바라보이는 넓은 김포평야를 비롯해, 개화산, 그리고 그 주변에서 겪은 유년의 추억들이 하나의 ‘시적 은유’가 되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합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를 잘 감상하기 위해서도 당시 그가 연작으로 노래했던 ‘김포’라는 동네의 특수성을 먼저 알고 그 김포가 그의 작품에서 어떤 ‘시적 은유’로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시집에 연작으로 실린 시 중에서 ‘김포1’에서 당시 김포 마을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 한데 모여 살아갑니다 / 한낮에도 애를 업고 / 담장 밖 기웃대며 서성이는 사내들과 / 한밤에도 돌아올 줄 모르는 여인들이 / 한데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 오늘도 고향 그리워 / 밤으로 돌아눕는 뜨내기들과 / 빈 거죽만 쥐고 있는 본토박이들이 / 구멍가게 모여 술주정하다 / 한가지로 쓰러지며 살아갑니다 / 철저하게 사랑에 버림받은 젊음과 / 철저하게 사랑을 배신한 젊음이 / 그래도 사람 그리워 / 한가지로 눈물지으며 살아갑니다 / 이다음에 장군이 되겠다는 아이와 / 이다음에 죄인이 될 것 같은 아이가 / 비행기 꼬리에 돌팔매질하며 / 한가지로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 봄이면 아낙네들 취로사업 때 / 길 따라 심어놓은 코스모스와 / 댓돌 밑에 얼굴 내민 이름 모를 꽃 / 한가지로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늦은 밤, 마지막으로 배차된 버스가 김포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버스 안에 유일했던 마지막 손님까지 ‘골목 끝 어둠 속으로 보내고’ 이젠 운전수 혼자 캄캄한 종점에서 멀리 김포 비행장의 수은등이 바람결에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 사연들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 삶의 이롭지 못한 만큼을 걷다가 / 기쁘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울다가 / 슬프지 아니한 시간만큼을 취하여 / 흔들거리며 가는 김포행 막차’를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텅 빈 버스 속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운전수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김포’라는 사실을 시인은 확인시켜 주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시인은 이내 홀로 남은 운전수가 되어 골목길 끝 어둠 속으로 보낸 그 김포 사람들의 애환을 이미 다 아는 듯, 그들의 마음을 이렇게 위로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아직도 / 그대 진정 사람이 그리웁거든 / 어둠 속 벌판을 달리는 / 김포행 막차의 운전수 양반 / 흔들리는 뒷모습을 생각하라’ 고 말입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어 오는 멋진 시입니다.
요란하면서도 난해한 시어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박철 시인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러나 거짓 없는 솔직함으로 외로운 시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삶의 가장자리까지 들여다보면서 조용히 홀로 아픈 존재들에게 다가가는 시인’이라는 평을 받아 왔던 박철 시인이 오래전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독자들과 베트남을 여행하던 중, 하루는 호텔 로비에 자신이 먼저 내려와 있었는데 시인이 그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동행했던 독자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바로 옆에서 들었다고 합니다. ‘시인 양반 어디 갔는지 안 보이네. 그 돈 떼먹은 양반 말이야!’라면서, 당시 신간으로 나온 시인의 시집에 실린 표제작 ‘영진설비 돋 갖다 주기’라는 제목의 시 속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하는 오해를 하면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시와 소설을 통해서 평범한 삶 속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시인의 문학의 지향을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김포(개화동), 그리고 그곳 상사마을에 있었던 ‘영진설비’라는 철물점은 시인에게 있어 특별한 은유로 다가오는 장소임에 틀림없나 봅니다. - 석전(碩田)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꾹 쑥꾹 쑥꾹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 시집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문학동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