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11월의 나무
-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1998)
* 감상 :황지우(黃芝雨) 시인, 극작가.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 황재우. 서울대학교 철학과(미학 전공)과 및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석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박사)과를 졸업했습니다. 1994년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했다가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옮겼습니다.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제 5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정년 퇴임하였습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였고, 1980년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습니다. 그가 등단한 해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 대학원에서 제적당하고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는 등 군부 독재 시절 저항시를 통해 젊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이 죽은 후 그를 추모하는 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를 경향신문에 발표하여 더 유명해진 시인이기도 합니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문학과지성사, 1983),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민음사, 1985), <나는 너다>(풀빛, 1987),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 1990),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조각 시집)(학고재, 1995), <어느 날 나는 흐린주점에 앉아 있을거다>(문학과지성사, 1998), <나는 너다>(개정판)(문학과지성사, 2015) 등이 있으며, 희곡집으로 <오월의 신부>(문학과지성사, 2000), 시론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한마당, 1993)이 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황지우 시인의 시를 읽으면 공감이 120% 가는 표현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난감한 사람이 /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이라든지,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와 같은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는 시어(詩語)는 재미있다 못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겨울 혹한의 추위가 닥치기 전인 11월의 나무로부터 느끼는 시인의 감정은 ‘아직은 남은 시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는 몸부림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혹독한 추위에 맞서서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두 팔 벌려 서있는 12월과 1월의 나무였다면 '가렵다'는 표현으론 몹시 부족한 표현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아직 혹한의 겨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11월의 나무처럼, 시적 화자의 삶도 우물쭈물하다 보니 해지는 저녁 어스름 12월,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는 마지막 문장이 이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나마 11월의 나무가 처한 모습처럼 ‘아, 이생이 마구 가렵다’는 표현 정도로, 안도의 한숨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자신이 시인이 된 것을 후회하는 흔치 않은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시인이 된 것은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어느 날, 황지우는 정장 차림에 안개꽃 한 다발을 들고 종로 3가 단성사 앞으로 나갔습니다. 안개꽃은 광주시민 학살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숨기기 위한 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엄군의 삼엄한 감시의 눈초리 앞에서 안개꽃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곧 지하철 1호선 역의 플랫폼에서 체포됐고 손목이 등 뒤로 묶인 채 거칠게 끌려 나갈 때, 오후의 햇살은 지하철 입구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는 지금도 그때의 그 지하철 입구와 그 때 쏟아졌던 그 햇살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바로 우리 사회 때문이었다. 80년 5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지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 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 모진 지옥에서 한 계절을 보내면서 증오의 힘으로 시를 썼다.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 같았던 것이다.’(시집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 1990)에 실린 저자의 말 중에서)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그의 첫 시집이자 그가 세상을 만나게 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였습니다. 80년대를 관통하며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내 오던 그는, 90년대 들어 근 10년 가까운 시간을 침묵으로 보냈습니다. 절필했다기보다는 도무지 쓰여 지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80년대의 문제의식을 너무도 쉽게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은 말하는 것이 악덕이다, 침묵만이 미덕’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대신 술을 엄청나게 마셨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술을 퍼붓다간 내가 죽지 싶었을 때,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광주 무등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요가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밀교에 깊이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손댄 것이 조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10년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할 소묘력을 지녔다’며 미술대 진학을 강권해 교무실에 끌려다니곤 했을 만큼, 미술적 감성이 풍부한 황지우였습니다. 흙덩이를 만질 때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도 끄덕없었습니다. 그렇게 90년대를 보내면서, 95년에는 개인 조각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1998년이 저물어갈 무렵, 한 편 두 편 써두었던 시를 모아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펴냈습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이 시집이 예상을 뒤엎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다시 시인으로서 세상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의 시 중에서 교과서에 실려 있어 학력고사의 지문으로도 인용되는 등 가장 잘 알려진 시가 아마도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시에서 ‘너’를 지칭하는 대상은 사랑하는 임이나 연인, 그리운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자유’ ‘민주’ ‘통일’ ‘평화’와 같은 추상적인 실체일 수도 있겠지요. 시인은 그저 수동적으로 그것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너에게로 찾아가는 기다림’을 노래하며 이 시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집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 1991)
그제와 어제 가을비치고는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어제 늦은 밤, 반려견 소심이를 데리고 우중 산책을 하다 보니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함박눈으로 변하더군요. 아마도, 오늘 아침 날이 밝으면 하얗게 쌓인 첫눈을 보고 모두가 깜짝 놀라겠지요.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자기 생을 털 준비가 된 11월의 나무도 이번 주가 지나면 영영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늦은 듯하지만 매서운 동장군(冬將軍)이 오기 전 첫눈을 만난 기쁨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은 꼼꼼히 챙겨 봐야 할 일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