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 봄비 - 변영로
논개
- 변영로(卞榮魯)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情)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릿답든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江)물은
기리―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발표 <신생활>(1923년 4월호)
- 시집 <조선의 마음>(1924)
* 감상 : 변영로(卞榮魯).
시인, 수필가, 영문학자. 호(號)는 수주(樹州). 1898년 6월 7일 경기도 부천 하오정면 고리울동 강살골(현재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서 태어났으며, 1961년 3월 14일 사망하였습니다. 본명은 변영복이었으나, 영로(榮魯)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그의 나이 61세가 되던 해인 1958년에야 정식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그의 호 ‘수주’는 부천의 옛 지명입니다.
서울 재동보통학교(계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2세 때 중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체육 교사와의 마찰로 인해 3학년 때 중퇴하였으며, 1913년 중앙기독청년회관 영어반을 6개월 만에 수료하였습니다. 1918년 영시(英詩) ‘코스모스’를 번역하여 <청춘>에 발표 천재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1919년에는 YMCA 구석 방에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해외에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1921년 <장미촌> 발행에도 참여하였고 1922년 이후에는 <개벽>지를 통해 수필과 발자크의 영시 작품 등을 번역하여 발표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처음 신시(新詩)가 소개될 당시 ‘기교파 신시의 선구자’로서, 압축된 시구 속에서 서정과 상징을 담은 시를 선보였습니다. 대표작으로 ‘논개’, ‘봄비’ 등 민족혼을 일깨우는 서정시와 해학 넘치는 수필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923년 이화 여자 전문학교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산호세(San jose) 주립대학 영문학과에서 수학하였습니다.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 <신가정> 주간 등을 지냈으며 광복 후에는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해군사관학교 영어교관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가 <신가정>의 주간으로 있을 때 손기정 선수의 다리 사진만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고 제목을 붙여 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려 그들의 압력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첫 시화집으로 <조선의 마음>(평문관, 1924)이 있으나 내용이 불온하다고 하여 발행과 동시에 총독부에 의해 압수, 폐기 처분되었습니다. 영문 시집<진달래 동산(Grove of Azalea)>(1948), 수필집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서울신문사, 1953), <수주 시문선(樹州 詩文選)>(1959) 등이 있으며, 그의 사망 20주기를 기념하여 유족들이 펴낸 <수주 변영로 문선집>(1981) 등이 있습니다. 1953년에는 <대한공론사>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1999년 부천시 주관으로 그의 호 '수주(樹州)'를 딴 [수주문학상]이 제정,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늘 뜬금없이 이 시를 꺼낸 것은 며칠 전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가 나오는 구약 사무엘서를 읽다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온갖 조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고 두려움에만 떨고 있자 어린 다윗이 ‘뜨거운 가슴으로’ 골리앗을 자신이 대적하겠노라 나서는 장면을 묵상하면서 문득 생각이 났던 시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입속에서 되뇌어졌던 시어 '거룩한 분노'라는 표현이 결국 이 시를 꺼내 읽도록 했습니다. 수주 변영로 시인이 첫 일성(一聲)으로 내뱉은 시어(詩語) ‘거룩한 분노’가 바로 다윗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는 조선의 기생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를 안고 촉성루 높은 곳에서 진주 남강(南江)으로 함께 뛰어내린 논개(論介, 1574~1593)의 애국적인 절개를 노래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교과서에 실려있었던 덕분에 학창 시절부터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시라고나 할까요.
시인이 노래했던 ‘거룩한 분노’의 실체는 무엇일까. 가냘픈 여성, 그것도 기생의 몸으로 왜장을 대적했던 상황은, 앞서 말했듯이 거인 적장 골리앗을 갑옷도 입지 않고 칼도 없이 물맷돌 하나만 들고 맨몸으로 대적했던 ‘다윗’의 모습에 비유될 듯합니다. 나라 잃은 설움을 가진 한 이름 없는 연약한 여성, 그것도 사람들로부터 가장 천대 받았던 기생이 적장(敵將)에 맞서는 용기는 다름 아닌 ‘거룩한 분노’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틀림없었겠지만, 시인이 노래한 ‘종교보다도 깊고 / 사랑보다도 강한’ 거룩한 분노는 단순하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그의 수필집 <명정 40년>에서 그는 40년간 술에 취해서 살았다고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했듯이, 수주 변영로는 대주가(大酒家)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 술을 마시면 끝장을 봐야 했던 그는 소학교 입학 전인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와 대작하며 술을 배웠고 평생을 술에 취해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왜 그랬을까. 동시대를 살다 간 소설가 현진건이 쓴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수록된 일화를 읽으면, 그가 가졌던 ‘거룩한 분노’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만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과 이를 부축하며 잔뜩 화가 난 아내, 취한 남편의 옷을 벗기며 대체 누가 술을 권했는지 구시렁대는데, 이를 들은 남편이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리더니만 “옳지, 누가 나에게 술을 권했단 말이요?” 따져 묻기 시작한다. 아내는 분을 삭이며 “지금 많이 취했으니 내일 술이나 깨고 (얘기) 하세요” 하는데, “천만에, 나 안 취했어. 누가 나한테 술을 권했을까? 내가 술이 먹고 싶어 먹었나?” 웃는 건지 화가 난 건지 가만히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대뜸 큰소리를 친다. “당신한테 물은 내가 잘못이지. 잘 들어봐요. 내게 술을 권하는 건 이 사회야. 사회가 내게 술을 권한다니까?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밤낮 서로 찢고 뜯고 하는데 뭔 일이 되겠냐고. 회(會)뿐 아니라, 회사고 조합이고 우리 조선 놈들이 조직한 사회가 다 그 모양이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내가 할 건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남편은 아내가 말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답답해하면서 다시 집을 나간다. 자신의 만류에도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리자 아내는 절망스럽게 중얼거린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아마도 수주 변영로는 적 앞에서 우리끼리 물고 뜯으며 싸우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참 많이도 실망했고 또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땐 이미 일제 치하였고, 특히 철이 들고나서부턴 도저히 취하지 않고선 하루도 살기 힘들 정도로 섬세한 시적 감성을 가진 시인에게 당시 내 민족 내 나라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고달픈 동족의 모습은‘안타까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장탄식(長歎息) 하는 시인의 한숨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며칠 전 우연히 본 한 유투브 방송 장면입니다. 이번에 미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가 시민들 앞에서 유세하며, '왜 우리가 한국의 방위를 위해 공짜로 지켜줘야 합니까? 제가 대통령이 되면 돈을 주지 않으면 군대를 반드시 철수할 것입니다'라며 대한민국에 대해 일방적인 자기 견해로 목소리 높여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손을 번쩍 들고 항의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높은 단상 위에서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자랑하듯이 하고 있던 그에게 이 청년은 유창한 영어로 '한국이 방위비로 내는 돈이 얼마인 줄 아느냐, 공짜라니 왜 거짓말을 하냐, 네 말은 사실(Fact)이 아니다' 항변하는 그 젊은이의 마음은 뜨거운 '거룩한 분노'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청년의 지적에 '그건 그저 푼돈(Peanut)일 뿐'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트럼프의 거만한 모습이 마치 제게는 다윗의 물맷돌 한 방에 쓰러지고 만 옛사람 '그 골리앗'처럼 보였습니다.
변영로 시인의 시를 하나만 달랑 감상하고 글을 마무리하기엔 너무 아쉬워 그의 대표작인 '봄비'를 덤으로 감상해 보겠습니다.
봄비
-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려-ㅁ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回想)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불키는 은(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노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신생활 2호>(1922년 3월)
- 시집 <조선의 마음>(1924)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님', 잃어버린 조국의 주권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어 오는 시입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정신없이 가고 있는데도 작은 욕심 때문에 그 길에서 돌아서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 않은지 반문해 봅니다. 알량한 욕심과 명예, 그리고 관습 때문에, 아니면 게으른 타성에 젖어 그저 침묵하면서 거대한 탁류(濁流)에 떠내려 가고 있지는 않은지. 뜨거운 가슴으로 나서서 나 혼자만이라도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한 분노’로 무장하고 선배 ‘논개’를 따라가는 삶의 자세는 아닌지. 깊어 가는 가을날에 생각이 참 많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