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한점 해봐, 언니 - 김언희

석전碩田,제임스 2024. 9. 18. 06:00

한점 해봐, 언니

 

— 김언희

 

한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언니,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님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 시집 〈보고 싶은 오빠〉(창비, 2016)

 

* 감상 : 김언희 시인.

1953년 7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9년 <현대시학>에 ‘고요한 나라’외 9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언희 시인은 ‘시단의 메두사’라 지칭될 정도로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특히 외설적 표현과 날 것 그대로의 거칠고 노골적인 비속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외설적 표현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그녀가 쓰는 시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토막 난 신체나 성적 은유 등 다소 충격적이고 불편한 장면들을 시의 세계에 끌어옴으로써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위험과 공포, 폭력 등의 속성을 드러내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김언희 시인을 두고 한 평론가는 ‘김언희 이전의 여성시는 내숭이었고, 김언희 이후의 여성시는 아류렸다’고 일갈했습니다.

 

집으로 <트렁크>(세계사, 1995),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 <뜻밖의 대답>(민음사, 2005), <요즘 우울하십니까>(문학동네, 2011), <보고 싶은 오빠>(창비, 2016) 등이 있습니다. 박인환 문학상(2004), 경남 문학상(2005), 이상 문학상(2013), 시와 사상 작품상(2014), 통영시 문학상(2016), 청마 문학상(2016)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그 내용이 시 속의 화자가 고등어회를 아직 먹어보지 못한 아는 언니에게 고등어회를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내용이지만, 시를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드는 시입니다. 왜 그럴까.

 

‘살이 깊어’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인데 ‘사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고등어가 쉽게 썩듯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라고 말하는 시적 화자의 말이 심상치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친다고 하면서 화자 자신도 그렇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한 걸음 더 다가서서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듭니다.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치고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치며, ‘마스크 속 내 입냄새에 아주 미’친다고 연거푸 자신을 한없이 타박합니다. 그래서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지만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라고 목청을 높이다가 이내 자신을 타박하던 화살을 순식간에 언니에게로 향합니다.

 

‘온 김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님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라며 언니를 다그치는 화자의 말이 마치, 이제 그만 가면을 벗고 혼자만 고고한 척, 순진한 척 하지 말고 어울려 보라는 말로 들리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므로, ‘한점 해봐 언니’는 겉으로는 고등어회 한 점만 먹어보라고 언니에게 권유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자신의 잣대로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님을 강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시에서 굳이 시적 은유를 찾으라고 한다면 ‘살이 썩는다’는 시어일 것입니다. 고등어의 특성이 잡으면 금방 죽기 때문에 잡는 순간부터 살이 썩는 것에 착안, 시인은 그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었지만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라는 말이 결국 이 시를 이끄는 ‘시적 은유’가 되어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는 깨끗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고고하고 순수한 삶이라고 그것만 붙들고 있어도 별 효용가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등어회는 9월을 시작으로 10월과 11월까지가 제철이라고 합니다.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잡히는 순간 죽는 것이 고등어라 지금까지 고등어로 회를 먹는 것은 시도도 하지 않았을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냉장 기술과 장비, 또 교통이 발달하면서 고등어회를 잘하는 집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그 맛을 내는 식당은 드문 게 사실입니다.

 

해 전, 제주에서 잠시 지냈던 미국에 사는 후배를 만났을 때 고등어회와 탕을 잘하는 식당이 있다면서 일부러 찾았던 이름난 식당이 있었습니다. 제주 모슬포항에 있는 ‘미영이네 식당’인데, 회를 별로 즐기지 않는 저도 그곳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설마 김언희 시인이 모슬포항의 미영이네 식당에 가서 언니를 이렇게 다그친 건 아니겠지요?

 

제는 추석인데도 오랜만에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그것도 누구와 함께 하는 산행이 아니라 ‘나 홀로 산행’이었습니다. 명절 당일에 이런 외도(?)을 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기도 했습니다. 태어난 지 120일을 겨우 넘긴 손녀가 오가는 길이 막혀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 위험하다고, 명절 이틀 전에 왔다가 하루 전날 갔고, 또 명절 당일에 해야 할 일정은 각자의 명절 나기 방식이 다양해지다 보니 명절이 지난 후 좋은 날을 잡아 하기로 미루는 바람에 이번 추석은 갑자기 텅 빈 날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토요일만 되면 북한산을 올랐던 시절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꽤 긴 산행을 하면서,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명절 나기’라고 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나 장손의 집을 방문해서 대가족이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단합과 결속을 다져야 하는 것이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긴 연휴를 이용하여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또 어떤 가정은 명절 연휴를 이용하여 국내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어제 제가 했던 것처럼, 나 홀로 여행이나 산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명절을 지내야 정답이라고 말하기에는 이제 너무 다양한 방식들로 나타나고 있어, 자기 방식을 고집하면서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도 큰 실례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 것인지 판단하기 전에,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 다양해졌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감상하는 김언희 시인의 이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절 당일에 산행길에 사람이 없을 줄 알았지만, 주 능선 산행길에선 심심찮게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명절날을 고집하기보다 평소에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또 삶 속에서 소소한 시간들을 나누며 정(情)을 확인하는 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명절을 꼭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원치도 않는 곳을 갔다 오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오히려 시인이 다그치는 말에 속는 셈 치고 한번 들어보는 건 어떨까.

 

글을 읽으면서 ‘그래도 명절은 명절답게 보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명절 당일 산행을 하면서 ‘외도(外道)’라고 표현한 저에게 돌직구 시인은 뭐라고 말할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