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는 약 / 속수무책 - 김경후
잘 듣는 약
- 김경후
이번 약은 잘 들을 겁니다
의사 말을 듣고
믿고 싶은 그 말을 믿고 나는 묻는다
얼마나 잘 듣지 않았나
이불 속에 드러누운 나의 마음은
컴컴한 창밖 얼어붙은 얼굴을 들이미는 나의 고함조차
듣지 않았지 열어주지 않았지
내가 있어도 나는 빈방
없어도 나는 나의 빈방
누구를 기다리는가
골목 구석에 쑤셔 박은 내 밤들
털 빠진 등허리를 말고 자던 내가 버린 고양이들
듣지 않았지 나는
내가 지내온 빈 밤의 소리들
내가 지워버린 빈 밤의 소리들
듣지 않고 딛고 가야 할 소리만을 믿었던 나는
나는 텅텅 빈 소리
그것들을 잘 다지고 잘 부수지만 잘 듣지는 않는 병
앞으로도 나는 듣지 않을
빈 방의 나의 소리들
이 약은 잘 듣고 있겠지
- 시집 <열두 겹의 자정>(문학동네, 2012)
* 감상 : 김경후 시인.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학사), 교육대학원(석사), 그리고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를 졸업했습니다.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민음사, 2001), <열두 겹의 자정>(문학동네, 2012), <오르간, 파이프, 선인자>(창비, 2017),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현대문학, 2018), <울려고 일어난 겁니다>(문학과지성, 2021) 등이 있습니다. 2016년, 제61회 현대문학상을, 2019년에는 제5회 김현 문학패를 수상했습니다.
김경후 시인이 김현 문학패를 수상할 당시, 선정위원회는 그녀의 시를 수상 작품으로 선정하는 이유를 "사람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찾아 언어의 은밀한 숨결과 울림을 일구어 보려는 처절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언어를 다루는 연금술사인 시인으로서 그동안 김경후 시인이 부단히 노력해 온 것을 인정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김경후 시인은 등단한 후 줄곧 우리가 쓰는 언어의 속성을 간파, 그 말의 쓰임새와 의미들을 분석하여 삶 속에서 시를 건져 올리는 작업을 통해, ‘고통, 절망, 허무와 마주하면서도 어떤 회피도 변명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끝내 시적(詩的)으로 정직하게 밀고 나가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약이 잘 듣는다’는 표현을 하나의 시적 은유로 삼아, 귀로 ‘듣는 것’의 활용들을 여럿 서로 비교하면서, 시인이 살아갈 삶의 전반적인 자세까지 버무려, 은유적으로 표현해 한 편의 멋진 시를 완성했습니다.
‘이번 약은 잘 들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가져온 약을 믿음으로 복용하려다가 시인은 문득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 듣고 살아왔는지를 자기 스스로에게 자문(自問)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아진 것은, 자신을 향해서 고함치는 몸의 소리조차 듣지 않았음은 물론,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내는 소리에만 관심이 있었지, 다른 소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듣질 않았으니 자신은 ‘텅 빈 방’, ‘텅텅 빈 소리’일 뿐이라고 한숨을 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있어도 나는 빈방 / 없어도 나는 나의 빈방’이 되어버린 내게서 나오는 소리는 모두가 다 ‘텅텅 빈 소리’일 뿐인, 결국 시인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은 시인입네 하며 ‘그것들을 잘 다지고 잘 부수지만 잘 듣지는 않는 병’에 걸린 것입니다.
매일 아침 묵상 글을 쓰고, 또 매주 수요일 한 편의 시 감상문을 써서 주변의 지인들과 나누지만 그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잘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듣지 않는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꼼꼼히 이야기를 들었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어 보는 답신을 받고, 그동안 나의 글이 상대방에게 의미 전달이 정확히 되지 않는 비문(非文)인 건 아닐까 오히려 스스로 반문하기도 합니다.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내 얘기만 하는 것을 시인은 ‘듣지 않고 딛고 가야 할 소리만을 믿었던 나는 / 나는 텅텅 빈 소리’라고 격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는 병을 정확하게 진단한 시인이, ‘잘 듣는 약’을 앞에 놓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이 약은 잘 듣고 있겠지’하는 반성의 마음이 그것입니다.
6개월에 한 번씩 강북 삼성병원을 들러 의사를 만나 건강 상담을 하고, 그가 처방해 주는 대로 몇 가지 약을 지어 옵니다. 한 보따리를 안고 와서 착실하게 복용하고, 약이 떨어질 때쯤이면 예약해 둔 날짜가 정확하게 다가오지요. 지난주, 나를 만난 의사는 마치 자기 병이 나은 듯, 화면에 나타난 지표들을 보면서 기뻐했습니다. 아마도 자기가 처방해 준 약들이 ‘잘 들어’ 우려했던 건강 수치(數値)들이 많이 개선된 듯했습니다. 약이 의사 말을 잘 들은 건지, 아니면 제 몸이 처방된 약을 잘 들은 건지는 모르지만, 좋아졌다는 말에 저의 기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잘 듣는다는 것, 이래저래 좋은 일인 건 확실한 듯합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먹을 약을 또 잔뜩 사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묻습니다. ‘이 약들은 잘 듣고 있겠지?’
‘언어의 은밀한 숨결과 울림을 일구어 보려는 처절한 시도’가 엿보이는 시인의 대표 시 한 편을 더 감상하고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는 사자성어(四子成語)에 나오는 ‘책’이라는 발음과 우리가 읽는 ‘책(冊)’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하여, 시적 은유를 확장해 나가는 묘미가 쏠쏠한 시입니다.
속수무책
- 김경후
내 인생 단 한 권의 책
속수무책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묻는다면
척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
진흙 참호 속
묵주로 목을 맨 소년 병사의 기도문만 적혀 있어도
단 한 권
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찌그러진 양철 시계엔
바늘 대신
나의 시간, 다 타들어 간 꽁초들
언제나 재로 만든 구두를 신고 나는 바다 절벽에 가지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묻는다면
독서 중입니다, 속수무책
- 시집,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창비, 2017)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는 사자성어는 말 그대로 ‘손을 묶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손으로 무엇이든 해야 하는 사람이 손이 꽁꽁 묶였으니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내 인생 단 한 권의 책 / 속수무책’이라고 넌지시 화두를 던집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자신의 맘 같지 않게 술술 잘 풀리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런 자신을 보고 누군가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느냐 묻는다면’ 해 줄 수 있는 말은 ‘속수무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 답을 찾지 못해 지금도 ‘독서 중’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속수무책’의 상황과 마주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인생사가 다 내 맘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시인이 노래했듯이, ‘재로 만든 구두들 신고’ ‘바다 절벽에 가’는 그런 일을 당해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그래 아직도 나는 속수무책을 독서 중이야’라고 웃어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