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토끼풀꽃 / 복숭아밭 - 남대희

석전碩田,제임스 2024. 4. 10. 06:00

토끼풀꽃

 

- 남대희

 

어제저녁 친정 간다고 나간 아내가

아침 산책길 잔디밭 모퉁이에 앉아 있다

재주도 없는 내게 시집와서 행여나

꽃밭에라도 앉아 볼까 했을 텐데

평생을 잡풀 속에서 하얗게 늙었다

그래도 아들딸 낳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 하나 장만했으니 행복이란다

내겐 둘도 없는 행운인데

 

-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도서 출판 움, 2023)

 

* 감상 : 남대희 시인.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고 2011년 월간 <우리 詩>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나무의 속도>(도서 출판 움, 2015),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도서출판 움, 2023) 등이 있습니다. 2024년 1월, <오륙도 신문> 신춘문예 디카시 부문에서 당선되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전철을 타기 위해서 연신내역 플랫폼에 들어서면 ‘클로버꽃’이라는 제목으로 만날 수 있는 시입니다. 처음 이 시를 읽고는 그저 지나쳤지만, 시내에 전철로 나갈 때면 이용하는 전철역이다 보니 자주 만나야 하는지라 어느 날부터 시인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인이 <우리 시>를 통해서 등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토끼풀이 돋는 봄이 되면 이 시를 한번 함께 감상해야겠다 생각하고 보관해 두었습니다.

 

생진, 채희문, 임보(강홍기), 박희진 시인, 박흥순 화백 등이 활동하고 있는 (사)우리시진흥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우리시>는 홍해리 시인이 대표로 있습니다. 또 ‘우이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보(강홍기), 채희문 시인 등의 시는 그동안 이곳 ‘아침에 읽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종종 소개했던 적이 있기도 해서 어딘지 모르게 친밀감을 느낀 탓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유난히도 토끼풀을 보기만 하면 웅크리고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집중하는데, 물론 그때마다 흔하지 않은 네잎클로버를 용케도 찾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곤 합니다. 아마도 지하철역에서 이 시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아내의 모습이 연상되어 100% 공감이 갔다고 해야 더 솔직하고 적격한 표현일 듯합니다.

 

인은 집 근처 산책길 양지바른 한 모퉁이에 자란 하얀 토끼풀꽃을 보면서 마침 친정에 간다고 없는 아내가 그곳에 앉아 있는 줄 착각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노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끼풀 속에서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내의 모습을 ‘재주도 없는 내게 시집와서 행여나 / 꽃밭에라도 앉아 볼까 했을 텐데 / 평생을 잡풀 속에서 하얗게 늙었다’고 표현하며, 남편으로서 화려한 ‘꽃밭’을 마련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아내 덕분에 ‘그래도 아들딸 낳고 양지바른 곳에 / 자리 하나 장만했으니’ 넉넉하진 못하더라도 자신은 ‘네잎클로버 행운’을 발견한 셈이라고 자랑 겸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노래하는 소박한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찾는 ‘행복’, 즉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는 시인의 노래처럼 먼 데 있지 않고 그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소소한 깨달음’이요, 비록 넉넉하진 않지만 ‘내가 지금 가진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난주에는 매년 그랬듯이 고향 마을 뒷산에 있는 가족 선영을 성묘하는 짧은 여행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룻밤을 고향에서 묵은 후 이번에는 곧바로 부산을 향했습니다. 30년 전 부산에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갔던 둘째 처남이 최근 한국에 와서 부산에 있는 셋째 처남과 잠시 함께 있는데, 그동안 서로 SNS로만 안부를 묻고 직접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남녘의 꽃구경도 할 겸, 겸사겸사 직접 만나는 시간을 잡아 본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확인한 서로의 모습은 비록 ‘하얗게 늙었다’고 노래한 시인의 말이 맞았지만, 혈육이 만나 서로 ‘행복’을 나누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2박3일 간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는 경부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도로 표지판에 적힌 남녘 지방의 지명들과 봄의 화사한 기운이 묻어 있는 바깥 풍경들이 어찌 그리도 정겹던지요. 양산, 통도사, 밀양, 건천, 경주, 영천, 경산, 대구, 칠곡, 구미, 김천 등 그냥 이름만 들어도 옛 유년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행복한 ‘고향 근처의 지명들’ 말입니다. 학창 시절 유일한 수학여행을 중학교 2학년일 때 갔는데, 당시 경주와 거제 한산도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이어서인지 저는 ‘경주’라는 지명만 보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경주’라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무조건 핸들을 꺾어 고속도로를 나왔습니다.

 

‘무조건’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사실 '경주에 가면 경주에 있는 배씨(裵氏) 시조 지타공(祗沱公) 할아버지를 모신 사당(경덕사, 경주시 탑동 소재)에 들러 참배하는 것도 ‘한식일 맞이 성묘 여정’으로는 의미 있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만개한 벚꽃 탓인지 이미 경주에는 수학여행 학생들과 상춘객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50년 전 수학여행을 왔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대왕릉과 천마총 등을 둘러보며 사람 구경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경덕사 참배 후에, 형산강 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왕벚꽃을 두고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그 아래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던 순간들은, 먼 훗날 또 하나의 행복한 추억거리가 될 것입니다.

 

시 고속도로에 올라 북쪽을 향하여 속도를 내는데, 그제야 아침 식사 후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그 시간까지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음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다 불현듯 지난해 경산에 있는 대구한의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경상도 전통 방식으로 끓여내는 추어탕 맛집이 생각났습니다. 즉시, 경산에서 또 고속도로를 나와 인터체인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을 찾았지요. 오가는 시골 국도길이 어찌도 그리 아름답던지요. 길 양옆으로 연분홍색 꽃들이 피기 시작한 복숭아밭의 풍경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멀리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막 꽃이 피기 시작한 ‘그 복숭아밭들’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러면서 남대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에 수록 되어있는 ‘복숭아밭’이란 제목의 시 한 편을 덤으로 읽게 되었으니,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숭아밭

 

- 남대희

 

사월 복숭아밭은 여학교 교실이다

가지가지마다 연분홍빛 소녀들 재잘댄다

뜀박질하는 햇살 사이로

왕거미 뜨게질 한창이다

꽃자리마다 솜털 보송할

풋풋한 꿈 영글어 가는 교실

 

바람과 햇빛

꽃잎마다 쌓이면

꽃 분 칠한 벌 나비들 분주히 날고

 

초록 이파리 사이

수줍은 젖 망울 부풀 듯

발그레 볼 붉히는 복숭아 단물 오르면

교실 칠판에 빼곡한 글씨처럼

소녀들 가슴에 가득 찬 꿈들도

복숭아 씨앗만큼 단단해지는

아지랑이 하롱하롱 꿈꾸는 사월

 

- 시집 <나무의 속도>(도서 출판 움, 2015)

 

은 시절,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토끼풀꽃이 피어있는 곳이면 으레 기웃거렸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행운과 행복은 토끼풀꽃 밭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평생을 잡풀 속에서 하얗게 늙었’지만 ‘아들딸 낳고 양지바른 곳에 / 자리 하나 장만했으니 행복이란다’라고 노래한 시인처럼, 또 김종길 시인이 ‘설날 아침에’라는 시에서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노래했듯이, 이미 ‘네잎클로버’는 찾았으니 말입니다.

 

항으로 오기 위해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며 들어선 연신내 전철역, 여전히 그곳에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바로 네잎클로버’라고 외치는 시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4박 5일간의 짧은 중국 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 석전(碩田)

경북 경산 지역 국도변에서 볼 수 있는 복숭아밭의 꽃이 핀 모습
부산 거가대교 휴게소에 설치된 조형물...벚꽃과 바다를 배경으로 처남들과 기념 사진

 

경주 대왕릉 전경, 그리고 배씨 시조 지타공 사당인 경덕사 앞에서...추어탕 맛집은  경산시 남방동 20번지에 있는 <두꺼비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