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소매물도 나들이
해마다 한식일이면 성묘를 핑계 삼아 고향 마을을 찾고 또 그 후에는 발길 닿는대로 가보고 싶은 곳 나들이를 하는 게 요맘 때 하나의 의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녔던 곳을 손꼽아 보니 이곳 저곳 참 많이도 다닌 것 같습니다. 창녕 우포 늪, 경북 영덕의 해맞이 언덕, 통영 미륵산과 비금도, 화왕산, 청량산과 청량사...
이번에는 몇 년 전 풍랑으로 인해 접안 시설이 망가지는 바람에 가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소매물도를 다녀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리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통영항에서 소매물도를 가는 것보다 거제 저구항에서 가는 게 훨씬 가깝고 배 타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기치도 않게 거제를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려 가는 길, 고령을 지나면서부터 고속도로 주변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봄' 그 자체였고 남해로 가까와질수록 그 풍성함은 더했습니다. 고향 마을에서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계획된 시간보다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목적지 거제에는 밤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야 도착, 예약해 둔 호텔에 체크인을 했습니다. 아내의 고등학교 시절 선배였고 지금은 거제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미리 전화를 해 놓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할 뻔했지요. 평일에다가 아직도 관광철이 다가오지 않은 작은 부두 근처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고 적막 가운데 빠져 있었으니까요.
■ 이른 아침, 8시 30분 첫 배를 타기 위해 저구 항으로 가는 길은 벚꽃 터널이다 싶을 정도로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길의 끝 지점 쯤에서, 저구항을 내려다 보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구항에서 소매물도로 가는 배 시간은 하루 세번. 아침 첫 배와 12시, 그리고 오후 2시. 그러나 마지막 배는 소매물도에 숙소를 정한 사람만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요즘은 인터넷으로 배를 예약할 수 있어 얼마나 편리한지요) 저구항에서 소매물도까지는 대략 50분 정도가 걸리니까, 통영항에서 가는 시간인 2시간보다 확실히 짧은 편입니다.
경쾌한 기적 소리 울리며 출발한 배는, 높이 솟은 거제 망산을 뒤로 하고 거울 같이 잔잔한 다도해 바다를 미끄러지듯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만나는 섬이 오른쪽으로 길게 누워 있는 섬, 장사도. 뱀 처럼 긴 섬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안내 방송이 간단하게 멘트를 해 줍니다.
한참을 달린 배는 매물도에 있는 두 개의 항을 잠시 경유해서 소매물도에 정확한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비 소식도 있고 또 바람도 분다는 일기 예보 때문에, 돌아오는 2시 30분배는 취소되었으니, 12시 배를 이용하라고 안내했습니다. 소매물도 등대섬까지 다녀오는 데에는 시간이 충분하니 걱정 말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니, 시간 낭비없이 시간을 벌 수 었어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 항구에서 등대가 있는 섬까지 걸어서 다녀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반 남짓. 환상의 해변 트레킹 길입니다. 그림 같은 바다와 섬 주변의 기암괴석을 구경하면서 걷는 길은 오르내리는 계단이 힘들다면 힘들 뿐 쉬엄 쉬엄 걸을 수 있는 멋진 길이었습니다. 길 주변에 자생하는 수많은 동백 나무 꽃들은 이미 대부분 선연한 분홍색이 바래져서 몸뚱아리 채 떨어졌지만 몇몇 꽃 봉우리들은 아직도 마지막 모습을 유지한 채 안간힘을 쓰면서 낯선 여행객들을 맞으며 인사하는 듯 했습니다.
■ 소매물항 어느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개인 듯 싶은데, 섬을 찾은 나그네들의 길라잡이를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먼저 열심히 걸어가서 포토 뷰에서는 자기가 먼저 도착,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하는 듯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함께 사진도 찍어주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구요. ㅎㅎ
■ 등대가 있는 섬까지 다녀와야 소매물도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지만, 물때가 맞지 않으면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곳이기도합니다. 두 섬이 밀물 때엔 끊어지고 썰물 때는 이렇게 열리는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 날은 11시 이전까지만 다시 건너오면 안전했지요.
■ 완주 기념으로 인증 샷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빗 방울 몇 개가 듣는 걸로 그쳤고 짙은 안개와 시원한 바닷 바람은 오히려 오르내리느라 흘린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햇볕이 쨍쨍한 날보다 더 좋아서 날씨마저 우리의 나들이를 응원하는 듯 했습니다.
■ 길 옆에 막 피기 시작한 '장딸기' 꽃이 우리가 다시 이 섬에 올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듯 인사를 하고 있어 카메라에 한번 담아 봤습니다.